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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도전해 세상의 편견을 지우고 변화를 이끈 대중문화 단짝들 인터뷰.
방송인 김혜영(오른쪽)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마이크 앞에 앉아 있다. 결혼식 당일 생방송으로 MBC 라디오 프로그램 '싱글벙글쇼'를 진행했다. 1988년 5월 4일 모습. KBS 영상 캡처
세상의 변화를 이끈 대중문화 단짝을 조명하는 인터뷰 시리즈 '환상의 콤비'. 지난 14일 공개된 네 번째 주인공은 KBS 교양 프로그램 '아침마당' 간판 코너인 '도전! 꿈의 무대'의 '뒷것' 방송인 김혜영과 이헌희 PD였습니다. '아침마당'이 최근 1만 회를 맞아
알라딘게임 그 마당을 지키고 있는 콤비를 찾고 싶어 스태프들에게 물어보니 두 분을 추천했습니다.
외주 제작 PD '홍보 전도사'
섭외 전화를 하니 김혜영씨는 이 PD 얘기만 쉴 새 없이 들려줬습니다. "방송 후에도 힘든 무명 가수들이 인생 고민을 털어놓고 그러면 또 청계산 데리고 가 그 고
바다이야기하는법 민을 들어줘요. 이런 PD가 어디 있나요?" 김혜영씨의 이 PD에 대한 믿음은 두터웠습니다. 이 PD는 방송사 소속이 아닌 외주 제작 PD입니다. 김태호, 나영석씨처럼 이름이 알려진 스타 외주 제작 PD도 아닙니다. 드라마가 아닌 교양, 예능 분야에서 외주 제작 PD에 이렇게까지 신뢰를 보내는 연예인은 그간 본 적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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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1209120004994)
릴게임추천 최근 만난 방송인 김혜영은 인터뷰에서 "끈적임"을 말하며 웃었다. KBS '아침마당' 제작진과의 협업 그리고 신뢰에 대해 말하다 나온 반응이다. 박시몬 기자
바다이야기사이트 '환상의 콤비' 취재를 하며 느낀 건 김혜영씨가 관계 그리고 일에서 '끈끈함'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결혼식 날 '출근'이 실화라고?
대표적 일화가 있습니다. 1988년 5월 4일, 김혜영씨는 결혼식 날 MBC 라디오 프로그램 '싱글벙글쇼'를 생방송으로 진행했습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스튜디오에 앉은 신부의 생방송은 한국 방송사에 유례가 없던 일이었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당시 담당 PD가 농담으로 "결혼식 날이라도 방송은 하고 가야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라 가능한 농담이었겠지요. 한데, 김혜영씨가 "진짜로 방송하고 갈게요"라고 받은 게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그램을 하루라도 비우는 게 마음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는 그날을 책 '행복하기에도 여자의 인생은 짧다'(2007)에서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때는 '내가 하는 일이 나를 꼭 필요로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해오던 방송을 마치고 결혼식을 할 수 있어서 더 행복한 기분이었죠. 결혼의 기쁨에 더해, 그제야 진정한 직업인이 된 듯한 성취감도 밀려왔고요."
당시, 김혜영씨는 방송 2년 차였습니다. 이름을 걸고 맡은 프로그램을 단 하루라도 비우면 '대체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존재하던 시절이겠지요.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방송인 강석(왼쪽)과 김혜영이 2020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강석·김혜영의 싱글벙글쇼' 진행 33년 감사패를 받았다. MBC 제공
"네, 또 그럴 거 같아요" 37년 지나 물어보니
결혼식 한 시간 전까지 생방송을 한 김혜영씨는 신혼여행 중에도 마이크를 놓지 않았습니다. 신혼여행지는 제주였습니다. 서울에서 팩스로 보낸 원고를 받아 제주MBC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진행했고, 서울에서는 강석씨가 함께했습니다. 따로, 또 같이 이원생방송을 한 겁니다. 최근에 만나 이 얘길 꺼냈더니, 신혼여행은 '별이 빛나는 밤에' 제작진과 같이 갔다고 합니다. '싱글벙글쇼'에 합류하기 전, 김혜영씨는 고(故) 서세원씨가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에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신혼여행은) 제주도? 좋겠다"란 제작진 말에 김혜영씨는 "그럼 같이 갈래?"라고 되물었고 결국 '일'이 커졌습니다. 김혜영씨는 제작진 비행기 푯값도 모두 직접 냈다고 합니다. "왜요?"라고 물었더니 "제가 초대했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일을 진정 좋아했구나'라고 쉬 넘길 수 없었습니다. 아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37년이 지난 지금,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도 결혼식 날 방송하고 제작진이랑 신혼여행 같이 가시겠어요?" 김혜영씨는 딱 2초 뜸 들이더니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네, 또 그럴 거 같아요. 진짜 행복했거든요."
김혜영이 라디오를 진행했던 모습. MBC
촬영 후 티타임 부탁한 사연
김혜영씨는 책에 '직장동료는 제2의 가족'이라 썼습니다. '직장인들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 만약 그 시간이 만족스럽고 즐겁지 않다면 인생의 태반이 불행하다는 의미다. 직장에서의 시간이 만족스럽고 즐거우려면 다른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만족스럽고 즐거워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김혜영씨는 방송사를 "회사"라고 불렀습니다.
김혜영씨는 '아침마당' 제작진과도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15년 전 처음 프로그램에 합류할 때, 제작진에 단 한 가지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방송 후 티타임이었습니다. "방송이 끝나면 바로 흩어지지 말고, 다 같이 모여서 '우리 오늘 잘했어' 하며 손뼉 쳐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티타임은 때론 식사 자리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일과 삶을 분리하려 했지만, 그는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일 속에서 삶의 행복을 찾았습니다. 김혜영씨가 올해로 44년 차 방송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아파트 경비원 명절 용돈 챙기는 '김 반장'
반전은 또 있었습니다. 김혜영씨는 아파트 주민 사이 '김 반장'으로 통합니다. 올해로 25년째 동 반장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주민과 적극 소통하고 때론 번거로운 일도 해야 하는 게 이 일입니다. 연예인은 왜 이 일을 20년 넘게 하고 있을까요.
"하겠다는 사람이 없네요. 옛날엔 반상회 하면 과일 깎고 간식 준비하느라 바빴는데 요즘엔 안 그래도 되거든요. 서로들 부담스러워해서. 요즘엔 하는 일이 명절 때 경비 아저씨들 드릴 용돈 주민들한테 각출하는 정도예요. 주민 분들이 협조를 잘해줘서 수고스럽지도 않고요." 김혜영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비원의 명절을 손수 챙기는 김혜영씨의 이런 일상이 KBS '아침마당'에서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뒷것'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